🎩 에이브러햄 링컨와의 대화
대단합니다. 선거에서 졌을 때마다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극복했나요.
2026년 4월 17일 · 3번의 질문
만나 뵈어 반갑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입니다. 저는 여덟 번 선거에서 졌고, 두 아들을 먼저 보냈고, 나라가 둘로 갈라지는 것을 지켜본 사람입니다. 「나는 천천히 걷는 사람이다. 그러나 뒤로 걷지는 않는다」 — 이것이 제가 배운 전부입니다. 당신이 오늘 마주한 그 무거운 것, 천천히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대단하다는 말씀, 감사합니다. 그러나 대단하다기보다는 그저 끈질겼을 뿐입니다. 선거에서 지고 나면, 온 세상이 나를 등진 것 같고, 내일이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습니다. 그 무너지는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저도 주의회 의원부터 시작하여 여덟 번의 선거 중 여러 번 졌습니다. 1858년 상원 선거에서 더글러스에게 졌을 때, 지지자들이 저를 위로하러 왔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이 이렇게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때로 웃는 것밖에 할 수 없소." 그 웃음은 포기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잠시 멈춰 서서 내 상처를 들여다보고, 다시 일어설 힘을 찾는 방식이었지요. 저는 매번 법률 사무소 책상으로 돌아가, 다음 연설문을 쓰고 또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실패는 목적지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길고 험한 여정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제가 그토록 끈질기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 이 나라가 하나 되어, 모든 국민이 자유로운 땅이 되리라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그 약속이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당신의 그 어려움 속에도, 당신을 다시 일으켜 세울 어떤 소중한 약속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정치를 반성해보시는 마음, 깊이 이해합니다. 권력투쟁이 목적이 되어버린 정치를 보면, 저 또한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권력은 마땅히 더 큰 선(善)을 위한 도구여야 하는데, 때로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곤 합니다. 인간이 권력투쟁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느냐는 질문은, 어쩌면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과도 같을 것입니다. 저도 그런 고민을 수없이 했습니다. 제 내각을 꾸릴 때, 저는 저와 선거 경쟁을 벌였던 시워드, 체이스 같은 이들을 주요 자리에 앉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반대했지만, 저는 그들의 능력과 애국심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저의 정적이었지만, 동시에 이 나라를 함께 이끌어갈 동반자였습니다. 저는 1861년 취임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적이 아니오. 우리는 친구여야 하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반목의 덫에 걸려들게 됩니다. 권력투쟁은 인간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처럼 따라다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 그림자를 넘어서려 노력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전쟁이라는 가장 격렬한 투쟁을 이끌면서도, 그 투쟁이 끝난 뒤에는 어떤 마음으로 나라를 다시 세워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1865년, 두 번째 취임 연설에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 with firmness in the right, as God gives us to see the right, let us strive on to finish the work we are in."** (누구에게도 악의 없이, 모두에게 자비로, 신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옳음 안에서 단호하게, 우리가 하던 일을 마무리하도록 애씁시다.) 권력투쟁의 어둠 속에서도, 그 너머의 화합과 공존을 꿈꾸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가장 고귀한 희망이 아닐까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 마음속에서도 수많은 반대가 일었지요. 제 가까운 이들도 만류했습니다. '어떻게 당신을 비난했던 자들을 가장 가까이에 둡니까?' 하는 물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의 능력을 알았고, 이 나라를 위해 그 능력들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제가 모든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오히려 저보다 뛰어난 식견과 경험을 가진 이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이 한때 저의 정적이었을지라도 말입니다. 그들의 비판적 시각조차도 연방을 지키는 데 필요한 힘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인 감정이나 과거의 경쟁심이 이 위기 앞에서 중요한 것이 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저는 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가장 유능한 인재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 믿었습니다. 나라가 둘로 갈라져 전쟁을 치르는 마당에, 내각마저 분열되어 있다면 이 나라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1858년 상원 후보 수락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A house divided against itself cannot stand."** (스스로 나뉜 집은 설 수 없습니다.) 우리 내각 또한 하나의 집이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결단이었습니다.